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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stitute of Ocean Science & Technology

늘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는 KIOST, 끈끈한 인연으로 함께 했던 열정의 30년!

  • 조회 : 189
  • 등록일 : 2017-12-04

늘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는 KIOST,

끈끈한 인연으로 함께 했던 열정의 30년!

 

- 통영해상과학기지 박용주 기지대장 -

 


 

 

바다를 보며 자란 강화도 농부의 아들,

화수분 같은 수산양식업의 매력에 빠지다

 

한강 하구에 있어 ‘강을 끼고 있는 멋진 고을’이란 뜻의 강화(江華). 지천이 갯벌과 바다, 농토로 뒤덮인 이곳에서 유복한 가정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용주 기지대장은 수산업에 종사하시던 부친, 농사를 지으며 인삼밭, 정미소를 운영하시는 큰 형님 밑에서 자연스레 농업과 어업의 원리와 결실의 기쁨을 체득하며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에는 정부의 실업계고 진학을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경기수산고 증식학과(현 양식학과)에 입학, 이후 통영수산전문대학을 졸업하며 본격적으로 전문 수산업 종사자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 입사한 직장은 국내 수산중견기업 산하 양식장과, 한산도 앞바다에서 어업인들에게 높은 소득으로 인기가 높았던 진주조개 양식을 배우며 화수분 같은 양식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KIOST와의 첫 인연도 그 즈음인데, 지인에게 소개받은 KIST 부설 해양개발연구소(KIOST의 전신) 연구원을 통해 기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급어종 및 연어 송어류 양식 기술개발 연구’를 위해 가두리 양식장을 설치하고 함께 연구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전문 박사출신은 아니었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보며 자라 기본지식과 실무경험이 탄탄한 그로써는 상당히 흥미롭고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진 1. KIOST 통영해상과학기지로 가는 길(멀리 보이는 작은 무인도 앞에 사무실과 바다목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통영시 연명방파제 앞에서 통영해상과학기지 선박을 타고 갈 수 있다.)

 

사진 2. 통영해상과학기지 박용주 기지대장

 

“생각지 못한 제안을 받았지만, 이 분야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두리 양식장 설치에 필요한 목재를 싣고 강원도 옥계로 떠나 수개월간 연구진들과 연어 송어 양식에 관한 연구의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실험과 테스트를 병행해 나갔죠. 열악한 환경에서 외롭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이왕 시작한 일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젊은 날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연어와 송어 양식 연구에서 KIOST와 첫 인연

외로움과 고난을 견디며 가두리 양식 기술 개발

 

25살의 혈기 왕성한 나이에 강원도 옥계에서 홀로 외로움과 고난을 견뎌내며 연어와 송어 양식을 위한 테스트 베드를 구축해나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양식 연구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열정이 얼마나 컸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그렇게 몇 개월간의 시도와 실험 끝에 최적화된 가두리 어장을 세팅하는데 성공, 현지 주민들을 고용해서 실험 양식을 시도한 끝에 1986년 국내 최초로 가두리 양식을 통한 연어 생산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생산된 연어의 사이즈가 너무 작아 상품성이 적었고, 당시 국민들에게 연어라는 생선이 그리 대중적인 선호식품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성을 확인하는데 머문 절반의 성공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진주조개 양식장으로 갈 계획이었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어와 송어는 분명 20년 후 대중들이 선호하는 수산물이 될 것이고, 80년대 태어난 아이들 세대부터는 기존에 없던 훈제 연어 샐러드에 포도주를 먹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좀 더 머물며 상품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굳은 결심을 하고 ′87년 설 명절이 지난 다음 날, 다시 양식장을 찾은 그를 기다리던 것은 한바탕 겨울한파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시설이 모두 파괴된 폐허와 잔재뿐이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당시 가두리 양식장 설치비용이 아파트 30채 값 정도였는데 그 많은 비용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끝없는 절망감과 허무함을 느꼈으니까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이삿짐 박스를 들고 연구소 본원과 연어와 송어의 치어 양성을 위한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송어양식장, 강원도 양양내수면연구소를 통해 연어, 송어 치어를 양성, 그해 11월 다시 옥계로 이사해 부서진 구조물의 남은 잔해를 챙겨 경남 통영으로 이동하여 다시 한 번 가두리 양식을 시도했죠. 1년에 5번을 이사하며 온갖 고생 끝에 연어 양식에 성공, ′93년 6월 드디어 성공한 양식기술을 최초로 고합그룹산하의 치악수산에 기술 이전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인프라구축을 통해 현재의 통영해상과학기지가 각종 해양생물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미래 식량기지가 될 바다목장 연구에 참여

‘해안 안전’을 위해 양식 시스템 개발에 눈뜨다

 

그와 KIOST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KIOST는 ′95년부터 ‘해양 목장화를 위한 기반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연안의 해양생물자원 특성을 고려한 한국형 모델을 개발하고 ′98년부터 본격적으로 바다목장 연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해양과학기술의 종합기술을 연구·개발·적용·산업화 하는 이 계획에 그는 현장책임자로 전임 김종만 박사, 명정구 박사(생태기반연구센터 책임연구원)와 함께 연구원들의 현장 조사, 생산, 시설 설치를 지원하며 미래 식량기지가 될 바다목장을 차근차근 설계해 나갔다. 바다목장은 어류를 가둬 기르는 양식업과 달리 넓은 바다가 목장인 개념으로, 기존의 해양기술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한 첨단 해양기술의 결정체 같은 사업이었다. 그러나 바다목장에 방류할 어종 생산을 위한 통영의 가두리 시설도 태풍과 적조의 위험을 피해갈 순 없었다. 그는 농사를 아무리 잘해 놓아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생물도 중요하지만 이를 유지하는 시스템도 중요하다는 생각의 변화를 맞게 된다. ‘해안 안전’이라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생물 생산에서 이를 안전하게 유지·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눈을 돌린 그는 외국의 가두리 설계기술을 검토, 목재가 아닌 외력에 강한 폴리에틸렌 구조물과 경관 디자인까지 고려하여 국내 해안에 최적화된 가두리 시스템 모델을 고안했다. 상공에서 바라볼 때 유난히 예뻐 보이는 노란색의 가두리 양식장은 이후 전국에 보급되었는데, 멸종 위기였던 볼락의 복원과 참돔, 민어 등 다양한 어종을 생산하며 바다목장에 성공적으로 양성, 방류하는데 기여했다. ′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간의 시범사업이었던 통영바다목장 사업이 종료되고 현재는 사후관리를 해오고 있는데, 주요 식량자원의 보존, 증대뿐 아니라 실증연구실험장, 관광과 체험, 생태교육의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좌) 사진 3. 통영바다목장의 수중 모니터링 장면 / (우) 사진 4. 사무실에서 집무 중인 박용주 기지대장

 

 

삶의 행복을 위해 개인 사업을 접고 KIOST에 복직,

해상풍력과 수산업이 공존하는 생태 모델 구축 위해 노력

 

바다목장 사업의 성공은 이후 KIOST가 ‘해상풍력을 이용한 융복합 수산 양식(양식자원복합단지 건설) 및 수중테마공원 조성시스템’ 개발 연구 사업을 추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바다목장 사업 과정에서 얻은 해양 시스템 엔지니어링 분야의 노하우로 잠시 개인 사업을 운영하며 KIOST를 떠났던 그는 또 다시 본 연구과제 수행을 위해 사업을 접고 KIOST에 복직하게 된다.

 

“막상 사업을 하다 보니 반복되는 일상에 돈을 쫒게 되고 재미도 없더라구요. KIOST와 함께할 때는 새로운 도전에 늘 설레였고, 업무의 다양성도 마냥 좋았는데 말이죠. 돈 보다도 내가 흥미를 느끼고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삶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결국 생물생산 및 시스템 개발 분야라는 사실을 깨닫고 KIOST에 복직했습니다. 2014년 당시 국내에 시도되던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과정에서 전력사와 어민들의 갈등이 많았는데, KIOST와 함께 어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력사와 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명정구 박사와 함께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하여 해양환경과 자본, 지역주민이 모두 공존할 수 있는 ‘해상풍력과 수산업의 공존 방안’을 산자부에 제출, 최근 3년간 1단계 기초 연구를 마무리하였다. 이는 해상풍력발전단지 수면 하에 굴, 홍합이나 가리비 등을 양식할 수 있고, 이를 통한 수산자원조성, 레저관광, 관련 산업기계장비 개발 등 해상풍력단지의 유휴 해양공간 이용기술의 세계 최초 모델로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의 사회수용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바다목장이 자원 조성의 개념에 국한되었다면, 해상풍력발전단지는 양식과 자원이 결합된 신개념 지속가능생산 복합형 자원단지이자, 레저 및 관광, 관련 산업의 융합기술, 지역발전 활성화 등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인 구상인 셈이다. 이후에도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참가리비의 국내 양식을 위해 해양수층공간기술의 개념을 도입하여 수심(표층, 중층, 심층)별 층을 이용한 참가리비 양식 기초 생산기술 개발, 선박평형수 및 어패류 정화장치, 미세플라스틱 대량 포집장치, 양식어장 질병 제어장치, 등부표 성능개량 및 안정적 전원공급장치 개발 등 지역 및 국가 현안문제 해결에 대한 연구를 수행중인 그의 바다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다.

 

젊은 날의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통영해상과학기지

향후에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기지대장으로 기억되길

사진 5. 통영바다목장 위에서 포즈를 취한 통영해상과학기지 박용주 기지대장

 

 

 

“그간 수많은 기초실험들이 이곳 통영해상과학기지에서 이루어졌는데, 설립 35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우리 기지를 대외적으로 적극 홍보하고 많은 요소기술 개발, 지역 현안문제 해결과 종 보존, 기후변화 대응 연구·해양환경 모니터링 및 해양장비 시스템 개발에 역점을 둘 계획입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해상풍력과 수산업 공존방안의 복합양식 자원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어업인들의 소득과 복지 향상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가 머무는 사무실은 가두리 양식장과 함께 바다에 떠 있어 바람에 파도가 출렁거릴 때마다 배처럼 흔들리곤 하는데, 일반인들은 30분만 있어도 멀미가 나기 일쑤다. 그러나 “예전 현장 여건에 비하면 이곳은 호텔 수준” 이라며 여기 있을 때가 몸도 마음도 더 없이 편하다고 한다. “농사를 지으면 뿌린 만큼 거두는 것처럼 수산양식은 농업이 원천이자 연장선”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말에서, 농어업의 근본을 두루 꿰고 있었던 그였기에 그 많은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KIOST와의 끈끈한 인연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수없이 이사를 다니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젊은 날의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곳에서 앞으로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든든한 기지대장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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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7-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