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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stitute of Ocean Science & Technology

너른 별바다를 품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조회 : 2109
  • 등록일 : 2018-04-02
너른 별바다를 품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동해 독도를 품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다1

KIOST 심해저광물자원연구센터 손승규 센터장

일몰이 다가올 즈음 물러난 구름이 바다 위로 푸른빛을 돌려준다. 배는 계속 앞으로 가지만 주인 없는 태평양 주변에는 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는 남반구의 밤하늘은 쉽게 지나칠 수 없고, 총총히 박힌 별들 사이에서 남십자성을 찾고 있으면 국경에 상관없이 세계를 유랑하던 음유시인의 사색이 이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비슷한 말을 했지만, 바다를 보고 있으면 거대한 생명을 느낍니다. 일과를 마치고 배 위에서 파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죠. 내가 아무리 큰 배를 타고 있어도 넓은 바다에 놓인 하나의 작은 점이고,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깜빡임 중 하나일 뿐이에요.”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을 떠올리며
해양에 동경을 품다

손승규 센터장이 어렸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은 농업 인구가 많은 국가였다. 그러나 그는 엉뚱하게도 남과 북이 단절된 대한민국의 지도를 보며 마치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같다고 생각하며 해양에 막연한 동경을 품었다. 짧은 역사였지만 6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도 해양학과가 개설되고 있었는데 그는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개설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인하대학교 해양학과(현 해양과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서울 토박이였던 그가 방랑의 마법 가루를 발에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전국의 바다를 누비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에서 가져온 해수, 흙, 돌에 미래 가치를 새기다

석사 시절, 현장 조사를 위해 고무 부츠를 신고 큰 아이스박스를 나르던 손승규 센터장은 현지 주민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연구팀들의 입항을 바라보던 마을 주민들은 그가 얼마나 큰 물고기를 잡았는지 끊임없이 묻곤 했다. 고기를 잡은 게 아니라고 말하면, 주민들은 보여주기 싫어한다고 생각했는지 더 집요하게 손승규 센터장을 향해 다가왔다.

“채집한 해수의 변형을 막기 위해 샘플을 담은 병과 드라이아이스를 아이스박스에 보관해왔어요. 바다를 연구하는데 쓰는 거라고 설명하면 ‘나가서 고기라도 잡지.’라는 말이 되돌아왔죠. 배까지 빌려 타고 나갔던 사람들이 비싼 드라이아이스에 해수만 담아 온 걸 이해할 수 없었던 거예요.”

평생 고기를 잡으며 살았던 주민들에게는 아이스박스에 담긴 해수 샘플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흘린 땀과 노력을 지금 당장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으나, “그러게요, 하하.” 웃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만일 해수 샘플에게 인격이 있었다면 주민들의 그 무심한 말이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온누리호를 타고 드넓은 태평양에서
평생의 연구 과제를 조우하다

1990년, 손승규 센터장은 KIOST의 전신인 한국해양연구소의 일원으로 2년 간 근무했지만 곧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다. 그 때만 해도 KIOST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선택에 한 점 후회가 남지 않도록 공부에 열중하자는 목표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런 손승규 센터장과 KIOST를 다시 이어준 것은 태평양이었다. 1992년은 대한민국의 해저 탐사의 여명기로 한국해양연구소는 종합해양연구선 온누리호를 바다에 띄웠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대양(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연구가 많지 않았던 시기, 당시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손승규 센터장은 1993년 위탁연구과제 수행을 위해 온누리호에 탑승한다. 13노트(약 25km/h)의 속도로 먼 바다까지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까마득한 바다 밑까지 살필 수 있었다. 평생의 연구 과제가 된 ‘심해저광물자원개발’ 연구를 만난 것도 바로 이때다.

“태평양에서의 재회를 바탕으로 1998년 박사 후 연수연구원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에는 정식 연구원으로 자원연구본부(현 심해저광물자원연구센터) 발령을 받아 KIOST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죠. 생물생태연구팀 시절의 관심사가 환경이었다면 박사 과정을 마친 후에는 자원 개발로 연구 대상이 바뀐 거예요. 하지만 자원과 환경은 보존과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심해저광물자원개발’은 환경에 대한 기존 연구의 연장이자 더 넓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기회였죠.”
태평양 한가운데서 월드컵 4강 신화를 응원하기도

온누리호와 함께 세계의 대양을 누비게 된 그는 지난 2002년 5월 30일에도 하와이에서 태평양에 있는 우리나라의 망간단괴 탐사 지역으로 출항했다. 6월 말까지 한 달 일정이었지만, 한여름 밤의 꿈처럼 뜨거운 추억인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축제에 그들만 빠질 수는 없는 법, 그러나 태평양 한가운데는 TV도 라디오도 수신되지 않았다. 손승규 센터장은 육지와의 유일한 연락수단인 위성전화기 앞에 섰다. 붉은 악마로 변신한 승무원 및 연구원들은 경기 시간이 되면 맥주 캔을 들고 조타실에 모여 손승규 센터장의 말을 기다렸다. 손승규 센터장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들과 10분 간격으로 짧은 통화를 이어갔다. “경기는 시작했니?”, “몇 대 몇이니?” 조별 예선으로 끝날 줄 알았던 순간이 16강, 8강, 4강으로 이어지자 온누리호에 승선한 동료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한 것은 당연했다. 6개월 전에 미리 예매해 둔 입장권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했기에 더욱 즐거운 기억이었다고.

24시간 멈추지 않는 해양연구선
가족에겐 미안함, 동료에겐 고마움 느껴

온누리호와 함께 세계의 대양을 누비게 된 그는 지난 2002년 5월 30일에도 하와이에서 태평양에 있는 우리나라의 망간단괴 탐사 지역으로 출항했다. 6월 말까지 한 달 일정이었지만, 한여름 밤의 꿈처럼 뜨거운 추억인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축제에 그들만 빠질 수는 없는 법, 그러나 태평양 한가운데는 TV도 라디오도 수신되지 않았다. 손승규 센터장은 육지와의 유일한 연락수단인 위성전화기 앞에 섰다. 붉은 악마로 변신한 승무원 및 연구원들은 경기 시간이 되면 맥주 캔을 들고 조타실에 모여 손승규 센터장의 말을 기다렸다. 손승규 센터장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들과 10분 간격으로 짧은 통화를 이어갔다. “경기는 시작했니?”, “몇 대 몇이니?” 조별 예선으로 끝날 줄 알았던 순간이 16강, 8강, 4강으로 이어지자 온누리호에 승선한 동료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한 것은 당연했다. 6개월 전에 미리 예매해 둔 입장권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했기에 더욱 즐거운 기억이었다고.

  • 사진 1. 2008년 피지 탐사
  • 사진 3. 2016년 네덜란드 PELAGIA 호에서 피지 지역 탐사
  • 사진 2. 2014년 서태평양 탐사 중 휴식
  • 사진 4. 2017년 중국 청도 심해기지 방문

 

사진 1. 2008년 피지 탐사사진
사진 2. 2014년 서태평양 탐사 중 휴식
사진 3. 2016년 네덜란드 PELAGIA 호에서 피지 지역 탐사
사진 4. 2017년 중국 청도 심해기지 방문

물론 해양연구선에서 현장 밀착형 연구를 수행하는 일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심해저광물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경쟁은 ‘심해전쟁’이라 일컬어질 만큼 치열하다. 열수분출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장비(CTD)를 이용해 깊은 바다 속 해수를 퍼 올리고, 분석이 끝날 때까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것은 맷집이 약한 사람이라면 버틸 수 없는 고된 노동이다. 교대로 진행되는 연구가 24시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드럼통만한 금속 망태기를 바다 밑바닥에 던지고 열수로 변형된 암석을 건져 올리기도 하는데, 바다 속은 지형이 험해서 망태기를 매단 줄이 끊어지면 진땀을 뺀다. 어떤 이들은 배 멀미를 견디지 못하고 젖은 낙엽처럼 쓰러진다. 특히,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배에서는 자칫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연결되는데 항해가 순조로울수록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그러나 가장 힘든 일은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가족 곁을 지키지 못 한다는 것이다.

  • 사진 5. 2009년 여름, 하와이에서 가족사진
  • 사진 6. 2012년 한국해양연구원에서 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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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2009년 여름, 하와이에서 가족사진
사진 6. 2012년 한국해양연구원에서 강의 모습

손승규 센터장이 빙부상 소식을 들은 날도 그랬다. 가까운 항구에 내려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일주일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이때 그의 빈자리를 지켜 준 것이 육지에 있는 동료들이었다. 평소에도 육지에 남은 동료들이 바다에 나간 이들을 대신해 가계의 대소사를 챙긴다고. 연구원들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결속의 정체였다.

“센터에 소속된 연구원이 40명 조금 안 돼요. 현실적으로 저 혼자 모든 연구원을 챙기기는 힘들고, 때론 선의의 관심이 간섭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어요.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잊지 않아요. 공적인 업무는 일에 차질이 생기면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지만, 사적인 부분은 다릅니다. 저 역시 휴가 등을 써야할 때 조직에 불편을 줄까봐 이야기를 꺼내는 게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이들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손승규 센터장의 마음은 후배들이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맨 앞장에 적힌 감사의 글로 되돌아온다.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이다.

평생을 찾아다닌 심해 속 보물들
11조 원 규모의 심해광물 개발 및 확보 계기 마련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며 손금 보듯 태평양을 살핀 그에게 2018년 3월 27일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국제해저기구(ISA, 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 사무총장이 방한해 해양수산부 장관과 ISA 규정에 따라 향후 15년 간 독점탐사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KIOST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간 온누리호를 투입해 괌에서 약 1,000㎞ 떨어진 13개 해저산 탐사를 진행한 바 있다. 2016년에는 ISA에 독점탐사권을 신청해 여의도 면적(8.4㎢)의 약 350배에 달하는 3,000㎢ 규모의 마젤란 해저산 지역에 망간각 탐사 광구를 확보, 우리나라의 해양경제영토를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광구 선별과정을 거쳐 최종 개발 유망 광구(1,000㎢)를 확보해서 민간이 주도하는 상업화 과제가 남아 있지만, 해저 광물 자원을 탐사할 수 있는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데서 국제적 위상을 높임은 물론 전자, 전기, 제강, 화공, 귀금속 등의 산업용 재료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의 안정성을 크게 키울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번 탐사계약은 우리나라의 해양광물자원탐사기술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국제사회에서 3번째로 공해상 심해저에서 3개 광종(망간단괴, 해저열수광상, 망간각)에 대한 탐사권리를 모두 확보한 나라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림 1. ‘망간단괴, 해저열수광상, 망간각’에 대한 탐사광구

  • 사진 7. 망간각 해저면
  • 사진 8. 망간각 실물모습

그림 1. ‘망간단괴, 해저열수광상, 망간각’에 대한 탐사광구
사진 7. 망간각 해저면
사진 8. 망간각 실물모습

“저는 연구 영역이 넓은 사람이 아니에요. 독도와 남극도 다녀왔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미래 해양광물자원기술개발 범주 안에서 심해저광물자원개발 연구에 몰두했죠. 바다에서 찾은 광물자원을 상업화 과정으로 연결하는 게 긴 연구 생활의 종착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5년 정도 현역에서 연구를 진행할 것 같은데, 그 안에는 광물 자원을 상용화하는 게 어려워 보여요. 하지만 후배들은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가겠죠. 그들을 위해 길을 닦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의 기지개를 켜고 도전의 돛을 펼치다

어떤 이들은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승규 센터장은 삶의 폭을 한 뼘씩 더 넓고 깊게 만드는 것은 먼 시간의 계획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사진 9. KIOST 심해저광물자원연구센터 손승규 센터장

사진 9. KIOST 심해저광물자원연구센터 손승규 센터장

“축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박지성 선수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박지성 선수도 유명해지기 전에는 자신만의 롤모델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가 롤모델의 노하우를 따라갔기 때문에 위대한 선수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그 위치에 가 있게 된 거죠. 연구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마음에 긍정의 가치를 새기면 절반은 성공이다. 이번 5월에도 그는 희망을 품고 인도양으로 향한다. 그 바다가 어디든 크게 기지개를 켜고 돛을 펼친 그의 행보가 희망의 소식으로 이어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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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