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저도시, 모두가 바라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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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1-08-02
꿈의 해저도시,
모두가 바라던 바~다!
- KIOST 연안개발·에너지연구센터 한택희 책임연구원 -
대한민국 바다 깊은 곳에 공상과학 소설이나 SF 영화에서만 볼 법한 해저기지가 생긴다고?!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현재 경남 동해안(울산)에 건설을 추진 중인 '해저공간 창출 및 활용' 이야기다. 수중 건설기술, 우주 생존기술, 극한 의료기술, 수중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융복합 기술이 적용되는 블록버스터급 연구를 시도하며 미래 인류의 이상향이자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해저도시를 현실의 무대에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하 KIOST) 연안개발·에너지연구센터 한택희 책임연구원을 만나 본다.
토목공학 전공 후 건설회사에 입사,
거친 건설 현장에서 파이터로 거듭나다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멋진 신세계,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꿈의 해저도시를 만드는 기획자의 모습은 어떨까? 아마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진두지휘하는 당당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ZOOM 화면을 통해 처음 만난 KIOST 연안개발·에너지연구센터 한택희 책임연구원은 부드러운 미소에 다소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원 내에서는 업무상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그이지만, 사실 그리 꼼꼼하지는 않고 대충대충 넘어가기도 하는 성격이라고. 대학 전공인 토목공학과를 선택한 것도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성격상 세밀한 것을 다루는 전자공학 분야는 성격상 맞지 않아 다른 분야를 고민하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성적에 맞춰서 원서를 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전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공부보다는 주로 소설책을 읽거나 영화, 혹은 드라마나 게임 등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졸업 후 단연히 건설회사에 취직하여 ‘언젠간 임원이 되겠지’하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성향을 단번에 뒤바꾼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건설 현장에 발령난 일이다. 당초 본사 설계팀에서 근무하였으나, 신규사업을 수주하면서 지하철 건설 현장의 공정담당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회사의 계획과 규칙대로 현장 관계자들을 통솔하는 임무를 맡았던 그는 오래지 않아 평소의 모습대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장에서 자주 대면해야 하는 협력업체의 직원이나 현장의 인력들이 도통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까닭이었다. 험한 공사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그들은 사무실에서만 일을 했던 그를 대학에서 펜대나 굴리다 온 샌님처럼 여기고 대놓고 지시를 무시하거나, 본인들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예정된 일은 지연되고, 상사로부터 야무지게 대응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고. 이렇게 지내다가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겠다고 판단한 그는 현장의 불합리한 요구에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반전의 캐릭터로 거듭났다.
사진 1. 인천지하철 현장 근무 당시의 모습
그렇지 않아도 회사 입장에서는 관리직과 현장의 의견 차이로 늘 골머리를 앓던 터. 그는 약속된 규율을 어기면 담당자를 불러 호되게 야단도 치고, 때론 거친 말까지 쏟아내며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인부들을 관리해 나갔다. 때론 지위와 나이를 앞세워 불합리한 요구를 하며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는 결코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 그러자 현장에선 ‘저 사람은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일을 제대로 못하면 불호령을 내리는 존재’로, 회사에서는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속 시원한 파이터’로 각인됐고, 그 역시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인간군상을 겪으며 뾰족하던 성향을 누그러뜨릴 줄 아는 여유로움도 갖게 됐다.
외환위기 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학업에 매진, KIOST와의 첫 인연 시작
그의 일상에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친 것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였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도 당시의 많은 기업들이 그러했듯 IMF의 위기를 비켜 가지 못했다. 경영위기로 그해의 승진 취소와 급여 삭감이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회사에서 더 이상의 비전이 사라지자, 그는 고민 끝에 사표를 던지고 1년 여를 백수로 지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시간이었지만, ‘이런 기회에 공부를 좀 더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위를 받고 박사 후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연구에는 큰 뜻을 두지는 않았고 막연히 ‘나중에 다시 건설회사에 가겠지’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계속 논문을 쓰다 보니 점차 연구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다.
사진 2. 박사학위 논문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현장 실험 당시의 모습
그러던 중 새로 연구소를 설립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한 곳은 서울메트로 기술연구소. 그러나 이곳의 생활도 생각과는 달랐다. 창립 멤버로 입사했지만, 40여 명의 직원 중 실제 연구직은 본인을 포함해 2명뿐이고 나머지는 타 부서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다 보니 연구소의 운영 자체가 연구보다 타 사업부서를 지원하는 일이 우선시되었다. 또다시 ‘과연 이 일이 나와 맞는 것인가’라는 고민이 깊어질 즈음, 우연히 KIOST(당시 한국해양연구원)에서 구조공학·재료공역학 분야의 연구직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3. KIOST 연안개발·에너지연구센터 한택희 책임연구원
"당시만 해도 한국해양연구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또 이곳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전공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간 교량과 터널, 철도궤도, 모노레일 등 주로 육상의 건설 경험만 있을 뿐이었지만, 항만이나 해양플랜트 등 해양분야의 모든 사업도 결국 구조물로 결과가 나오고, 구조공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디에나 다 활용되기 때문에 적극 도전해 보고 싶었죠.“
‘신형식 합성·복합구조 풍력타워 개발’ 과제로
국토교통 R&D 우수성과 20선 선정 및 장관 표창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KIOST에 입사하자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전공과 기량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맞았다. 대표적인 연구는 그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초고층 빌딩이나 고교각에 적용할 요량으로 제안했던 공법을 새롭게 적용,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국토교통부의 지원으로 ‘신형식 합성·복합구조 풍력타워 개발1) ’ 과제를 수행한 일이다.
그림 1. 구속효과의 개념
그림 2. 신형식 합성구조 풍력타워의 단면(ICH RC Type)
그림 3. 신형식 복합구조 풍력타워의 단면(DSCT Type)
그림 4. 신형식 복합구조 풍력타워 FRP 튜브의 최적 적층 생산 기법(DSCT Type)
사진 4. 신형식 풍력타워의 성능 실험
이후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로 안전성이 향상된 고성능 신형식 구조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로 수행된 개발이론을 기반으로 그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에도 도전하여 신형식 풍력타워의 설계 프로그램인 CoWiTA(Composite Column and Wind Tower Analysis)를 개발, 관련 이론과 검증으로 15편의 국제학술논문 게재 및 실증비교실험을 통해 국제공인기관인 한국선급으로부터 2015년 풍력타워 분야 세계 최초로 국제공인인증을 획득하였고, 2021년에는 ‘해양수산 신기술’로 인증되었다. 원래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지만, 세계적인 구조해석프로그램인 영국의 루사스(Lusas)에 플러그인 모듈로 채택될 정도로 신뢰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나아가 동 과제는 2016년 국토교통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서 발표한 「2016 국토교통 R&D 우수성과 20선」에 선정됨과 동시에 그에게 2017년 국토교통부 장관상 표창이라는 커다란 영예를 안겨 줬다.
그림 5, 6. 신형식 풍력타워의 설계 프로그램인 CoWiTA 화면 모습
파급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관련 기술은 고교각, 초고층 빌딩, 해저터널과 같은 구조물 설계에도 활용이 가능했는데, 이들 모두 타워 설계와 거의 유사한 구조 역학 계산을 적용하기 때문이다.2)
속이 빈 형태의 합성 중공 기둥(Hollow Column)을 가로로 뉘여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수중 터널로 활용하고자 하는 KIOST의 신사업에도 그의 연구 성과가 적극 반영됐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테슬라 모터스 CEO 엘론 머스크가 제안한 육상의 하이퍼루프(Hyperloop)3) 가 대한민국 바닷속에서 구현될 날이 머지않은 이유이다.
사진 5. ‘신형식 합성·복합구조 풍력타워 개발’ 과제 연구진
(좌로부터 한택희 책임연구원, 홍혜민 기술원, 백승미 기능원, 김성원 기술원)
그림 7. 해저 하이퍼루프 개념도
모두가 꿈꾸는 인류의 새로운 미래,
해저도시 건설에 도전장을 내밀다
이렇게 해양 구조물 분야에서 소기의 성과를 일군 그가 지금은 일생의 또 다른 대업에 도전을 앞두고 있으니, 바로 모두가 꿈꾸는 인류의 새로운 미래, 해저기지 및 해저도시 건설이다. 현재 세계 각국이 다양한 유형의 해저기지와 해저도시를 개발하고 있는데, 두바이는 인공 섬인 팜 주메이라 끝단 한가운데 위치한 수중 호텔 ‘아틀란티스 더 팜(Atlantis The Palm Dubai)’을, 미국은 플로리다 해안에 다목적 해저과학기지 아쿠아리우스(Aquarius)를 건설·운영 중이며, 일본의 시미즈 건설도 바닷속에 건축물을 짓겠다는 '오션 스파이럴(Ocean Spiral)'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30년, 75층 높이에 5천 명이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해양수산부에서 해저도시 건설에 앞서 내년부터 해양공간 창출·활용 1단계 사업(2022년~2026년)4) 으로 수심 50m, 1,562㎥ 공간에 최대 4주간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 2단계 사업(2027년~2031년)으로 수심 200m, 1만 1,720㎥ 공간에 최대 77일 머물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을 목표로 R&D 예산 반영을 추진 중이다.그림 8. 해양수산부의 해저공간 연구 계획
그림 9. KIOST의 해저기지 개념도
그림 10. KIOST에서 계획 중인 해저기지 모델
사진 6. KIOST에서 계획 중인 해저기지 제작 모형
특히 심해에 건설되는 해저도시의 경우, 우주 공간에서의 조건보다 더 극한의 환경에서 건설되기 때문에 구조공학, 자원공학, 기계공학, 조선공학, 해양공학, 잠수의학 등 관련 분야의 최첨단 극한기술이 종합적으로 상호 융합되어야 한다.
그림 11. 관광·레저를 위한 수중해양공원 모식도
SF 미드를 통해 미래 해저도시의
다양한 시스템에 적용할 아이디어 구상
해저도시에 대한 그의 다이나믹한 구상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평소에 SF 미드를 통해 우주정거장의 도킹 방법이나 연결부의 디자인 등을 눈여겨보며 해저도시의 다양한 시스템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한 번은 ‘익스팬스’라는 미드에서 우주정거장에 진입하는 우주선을 드론으로 예인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보고, 실제 항만에서 대형 선박의 입출항 및 접·이안을 돕는 예인선을 떠올렸다. 예인선 도선사들의 인력 부족과 노령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에서 미래에는 드론이 예인선을 대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 특허도 출원했다고. 그만의 기발하고 선구안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렇듯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며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그의 책임감과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전도유망한 해양·항만 분야, 학생들이
기본기에 충실하며 많은 관심 가져주길
그는 해저기지 건설·운영 기술 개발 사업에 480억 원을 투자했을 때 생산 유발효과는 대략 805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300억 원, 그리고 445명의 취업을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건설시장은 육지의 도로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철도를 통해 정점에 다다랐고, 새로 열리는 시장이 바로 해양·항만 분야라는 것. 그는 앞으로 이와 관련된 유망하고 다양한 직종이 많이 생길 것이므로, 학생들이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과 조언을 전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나날들
늘 응원을 보내주는 가족이 있기에 든든한 일상
동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던 그는 최근 거의 격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는데, 새벽에 일을 하다가 문득 한가했던 예전의 생활이 떠오르기도 했단다. 이전 직장에서는 업무에 대한 갈증은 있어도 항상 정시에 퇴근해 6시 반이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건만, KIOST 입사 이후에는 10시를 훌쩍 넘겨 퇴근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매일 7시면 어김없이 “아빠! 언제 와?” 하면서 전화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함도 컸다는데, 이젠 어쩌다 9시에 들어가면 “아빠,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하고 깜짝 놀라더란다. 10년이 넘도록 가족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다른 취미생활은 할 엄두도 못 냈지만, 아내와 아이들 모두 현재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마음속으로 늘 응원을 보낸다. 그런 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사진 7. 가족들과 함께 한 스페인 여행
토목공학도에서 해양연구자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가 응축된 멋진 해저도시를 기대
건설 현장을 누비다 KIOST에 입사할 당시, 명함에 새겨진 ‘Scientist’라는 문구가 영 어색했다는 한택희 책임연구원. 원 내의 여느 연구자들처럼 해양과학을 전공한 오리지널 해양학자가 아니기에 스스로를 ‘엔지니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KIOST에서 오래 근무하며 해저도시도 건설하게 되니, 지금은 해양연구자라는 타이틀에 숟가락을 얹은 셈’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준관의 시 ‘구부러진 길’에는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좋다’라는 구절이 있다. 일찌감치 한 가지 분야에 목표를 정하고 이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고, 발 닿는 곳이 새길인 양 뚜벅뚜벅 걷고 돌고 돌아서 다다른 해양연구자의 길. 물 흐르듯 순행하며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쌓아 온 그만의 경험과 노하우는 이제 미래 해저도시 건설이라는 대망의 프로젝트에 한껏 응축될 것이다. 그의 멋진 상상력이 여지없이 발휘될 국내 최초의 해저도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날이 사뭇 기대된다.
* 본 기사는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켜 안전하게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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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
-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