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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stitute of Ocean Science & Technology

열정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 조회 : 79979
  • 등록일 : 2021-12-06
열정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 KIOST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 이정현 책임연구원 -


KIOST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 이정현 책임연구원

#내성적 #책임감

초·중학교 시절 성적표의 담임선생님 평가란에 항상 그를 따라다니던 키워드다. 모나지 않고 조용한 성격에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별난 사고조차 한 번 일으키지 않았으며,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른, 소위 ‘범생이’ 스타일의 캐릭터. 그 자신은 이런 내성적인 성격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내심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끝까지 해내는 고집스러움도 없지 않았다. 반면, 운동은 퍽 좋아해서 고등학교 시절 틈틈이 축구나 농구를 즐겼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땀 흘리고 뛰어다니는 과정에서 또래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내면에 지닌 외향적 성향이 서서히 발현되기 시작했다.

사격 서클에 푹 빠졌던 개성적인 대학 생활
일생의 반려자까지 만난 행복한 우연

1981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했는데 당시로선 유전공학이라는 용어가 아주 생소했지만, 미생물에 관한 연구를 해보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2학년 때 미생물학과를 전공으로 택했다. 하지만 크게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온 탓이었을까, 대학 생활 만큼은 좀 다이내믹한 활동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사격會’라는 개성 넘치는 서클에 들어갔다. 막상 가서 보니 남성적인 기운이 물씬 풍기는 공기총과 공기권총에 매료되었고, 정해진 과녁에 온 신경을 집중해 총을 쏘는 일뿐만 아니라, 서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대학 입학 이후에도 중·고등학생 시절 으레 따라붙던 ‘범생이’라는 별명의 굴레를 벗지 못하던 그가 서클 활동에 푹 빠져 학업 자체도 잊을 정도였다. 3학년 때에는 아예 서클 회장직까지 맡았다는데 그간의 성장 과정과 성향에 비추어 보면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2020년 9월까지 2년간 재직하는 KIOST의 부원장직을 맡았던 그는 ‘일부러 나서진 않지만 일단 뭘 맡게 되면 뒤로 빼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다만, 일을 맡는 데는 원칙이 있었는데, 자신이 맡는 일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일을 자신이 수행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라는 잣대였다. 이는 사격 서클에서 과녁을 정확히 맞추는 법을 터득했던 것처럼 목표에 대한 강한 집념이기도 했다. 서클 활동은 그의 인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이정표를 남겼으니, 바로 평생의 반려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일이다. 같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아내는 남자들이 대다수인 사격 서클에서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 대학시절 가입한 ‘사격會’ 서클 활동 당시 모습 1
  • 대학시절 가입한 ‘사격會’ 서클 활동 당시 모습 2

사진 1, 2. 대학시절 가입한 ‘사격會’ 서클 활동 당시 모습

“1980년대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어느 정도 구분하던 보수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우리 서클에도 의외로 음대 선배들도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 후배들도 선배를 따라 우리 서클에 들어왔습니다. 저와 달리 밝고 활달한 성격을 지닌 아내에게 제가 마음이 끌린 것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겠죠. 자주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정도 들면서 자연스럽게 캠퍼스 커플이 되었어요. 한마디로 서로 전공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지만, 다르기 때문에 각자 보지 못한 세상과 일에 대해 관심과 인식이 통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범생이었던 제게 서클 활동이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학기마다 M.T도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학업보다 더 열정적으로 활동했죠. 그 덕에 군 훈련 시절에도 사격을 잘했는데, 아쉽게 딱 한 발 차이로 특등사수를 놓칠 정도였어요.”
시골 농부의 아들로 오해받은
수수한 행색의 ‘범생이’ 캐릭터

당시 웃픈 일화도 있다. 방학 때가 되면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모두 각자 고향에 내려가곤 했는데 한번은 방학 중에 학교에서 마주친 선배가 ‘넌 왜 고향에 안 가냐?’고 묻더란다. 그는 ‘집이 서울인데 왜 고향엘 가죠?’라고 응수하자 그 선배가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란 것이다.

“고향은 경상북도 상주지만, 7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초등학교부터 죽 서울에 살았거든요. 그 정도면 누가 봐도 서울 토박이인데, 그 선배는 저를 지방 출신으로 본 거죠. 원래 외모 관리나 유행에 관심이 없어 수수한 차림으로 다녔어요. 저의 행색이 그러니 방학이면 모두 고향으로 내려가서 부모님 농사일을 돕는 농사꾼의 아들처럼 보였나 봐요. 지금도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한답니다. 다들 저를 당연히 시골 출신 학생인 줄 알았다고 해요. 하하하.”
선배 권유로 KIOST 입사
해양생물의 유전체 연구로 주목받다

학부 졸업 후 내친김에 석사 과정까지 끝내고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전공학센터(지금은 독립하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으로 변경)에서 연구원으로 4년 정도 재직했다. 그 과정에서 적성이 연구에 맞았는지(?) 다시 모교인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전문연구원의 공식 루트를 밟으며 박사 후 연수를 미국으로 갔는데, 아내가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미국 뉴저지 소재 럿거스대학교(Rutgers, The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였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꽤 이름난 곳으로, 그곳에서 섬유소(Cellulose) 분해 효소에 관한 연구에 매진했다. 연구와 실험으로 이루어지는 연수 생활은 국내와 비슷했지만,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선진국의 최신 기술 및 장비, 첨단화된 연구실 시스템을 접하면서 그의 시야는 확연히 넓어졌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한국과 미국을 오갈 때면 품앗이처럼 공항까지 라이드를 해주던 동료,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되며 마냥 외롭지만은 않은, 어쩌면 숨겨진 젊음을 불태우던 포스닥 시절이었다.

KIOST에 입사하게 되었다. KIOST에서 처음으로 수행한 것은 해양미생물 유전자를 활용한 연구로, 당시는 2000년대부터 유전자 분석 기술(시컨싱)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분자생물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였다. 특히, 2003년 미국에서 인간의 유전체 지도(Genome Map)를 해독했다는 발표에 따라 관련 연구가 핫이슈로 떠오르자 KIOST도 해양수산부의 지원 아래 2004년부터 해양생물 유전체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는 10년 기간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관련 기술과 정보처리 분야의 급속한 발전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고, 선진국과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수준으로 유전체 분석연구를 발전시켰다. 특히 온누리호를 타고 멀리 파퓨아뉴기니 근처에 있는 심해 열수분출구로부터 채집한 고세균(써모코거스 온누리누스 NA1)의 첫 번째 유전체 연구를 강성균·이현숙 박사팀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가 추진한 다음 분석연구 타겟은 뜻밖에도 지금도 비밀로 가득한 고래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고래는 원래 바다 동물이 아니에요. 육상에서 생활하다가 바다로 들어간 소, 돼지와 비슷한 동물로 약 5천만 년 전에 육지에서 바다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죠. 수많은 사람들, 특히 공룡처럼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고래는 바다에서 가장 큰 생물이지만, 어류와는 완전히 다른 분류군입니다. 비록 해양에서 살지만 산소 호흡을 하고 새끼를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류라는 점에서 우리 인간과 비교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연구 대상이었어요. 당시 인간 유전체를 연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고래 유전체를 해석한 사례가 전 세계에 전혀 보고되지 않았는데, 미국의 큰 연구그룹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생물정보분석 전문가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 박종화 교수팀과 협력하여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죠.”
세계 최초로 고래 유전체 연구 성공
네이처 지네틱스(Nature Genetics)에 게재

첫 시도로 우리나라 주변에서 포획되는 밍크고래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밍크고래 시료를 구해야 하는데, 직접 바다로 나가서 잡아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전체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하려면 고래의 혈액과 각종 장기 및 근육 등 종류별로 다양한 샘플이 필요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고래를 포획할 수 없었다. 그는 고심 끝에 동해에서 밍크고래가 종종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양경찰서와 고래 해체 전문가들을 수소문하여 정보를 얻고, 고래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어느 때는 미리 고래가 잡힐 것이라고 예상되는 장소에 가서 몇 날 며칠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날도 많았다. 연구를 위해서는 밍크고래뿐만 아니라 비교군 역시 필요해서 미국에 다른 종류의 고래 시료도 요청해야 했는데, 이때 동료 연구원인 임형순 박사팀이 도왔다. 다국적 팀을 꾸려 어렵게 시료를 확보한 연구팀은 신속히 고래 유전체 분석에 돌입했다. 밤낮을 잊으며 연구한 고래 유전체 분석 연구는 2014년 네이처 지네틱스(Minke whale genome and aquatic adaptation in cetaceans, Nature Genetics 46, 88?92, 2014)에 최종 승인되어 저널 표지로 장식될 정도로 널리 소개되었고, 당해년도 사이언스지에 ‘올해의 유전체-고래 유전체 해독되다’라는 타이틀로 소개됐다. 이는 고래 유전체 해석에 관한 세계 최초의 성과이자, 이후 다양한 고래 연구의 표본이 되었다.

“우리가 관련 연구를 해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말만 들었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닙니다. 적절한 시점에 연구비 지원은 물론, 연구자들이 집중해서 협력하고 노력해야 가능하죠. 무엇보다 공동연구를 통해 좋은 분석 포인트를 잡아서 스피디하게 진행돼야 하는데, 이런 삼박자가 제때 모두 잘 맞아떨어져서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아요. 이에 덧붙여 제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연구를 하든 연구팀의 신뢰와 성실성에 바탕을 둔 협력입니다.”
  • 그림 1. 2014년 최종 승인되어 소개된  네이처 지네틱스 저널 표지

    그림 1. 2014년 최종 승인되어 소개된
    네이처 지네틱스 저널 표지

  • 그림 2. 네이처 지네틱스 저널에 수록된  고래류와 인간 및 우제류와의 유전자 유사성 비교 이미지

    그림 2. 네이처 지네틱스 저널에 수록된
    고래류와 인간 및 우제류와의 유전자
    유사성 비교 이미지

인간과 다른 고래 유전자 특유의 기작 규명
화장품, 바이오메디컬 분야 응용 연구 수행

이후 과제는 고래 유전체를 사람과 비교하여 유용하게 활용 가능한 정보를 추출하는 일이었다. 고래는 사람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예를 들면 잠수하는 사람이 오랜 시간 숨을 참게 되면, 각종 세포와 근육 안에 산소가 부족해진다. 그런데 고래 중엔 최대 두 시간 가까이 잠수하는 고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래 유전자 및 단백질의 생리적 특성이 이런 상황을 견뎌내는 기작(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짠 음식을 먹으면 신장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 데 반해, 염도가 높은 수중에서 주로 활동하는 고래는 염분에도 견디는 생리적 기작을 지닌다. 그는 바로 이것이 고래의 독특한 유전자 변이에서 기인한 것임을 확인해냈다.

사진 3. KIOST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  이정현 책임연구원

사진 3. KIOST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 이정현 책임연구원

“연구자들은 좋은 연구성과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끼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연구와 분석을 잘하고, 우수한 논문을 발표했다 하더라도 ‘그래서?(So What?)’, ‘그걸 어디에 이용할 건데?’라는 질문이 늘 따라다니는 법이지요. 그런 면에서 반드시 응용 연구를 해야 하는데, 2017년부터 시작한 ‘해양단백질 기반 바이오메디컬 소재 개발’ 연구는 바로 고래 유전체의 후속연구인 셈입니다. 고래가 가지고 있는 성장인자(Growth Factor)의 특징을 인간과 비교해서 차이점 및 유용한 특성을 활용할 목적으로 시작했어요. 더불어 우리 몸의 기능이 유전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유전자가 실제 발현해서 작동하는 것은 단백질이거든요. 그래서 해양단백질에 관한 연구를 후속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해양단백질 기반 바이오메디컬 소재 개발 착수보고회 참석 모습

사진 4. 해양단백질 기반 바이오메디컬 소재 개발 착수보고회 참석 모습

고래 유전체의 후속연구로 진행되고 있는 ‘해양단백질 기반 바이오메디컬 소재 개발’ 연구 중 밍크고래와 인간과의 연관성에 관한 인포그래픽 이미지

그림 3. 고래 유전체의 후속연구로 진행되고 있는 ‘해양단백질 기반 바이오메디컬 소재 개발’ 연구 중 밍크고래와 인간과의 연관성에 관한 인포그래픽 이미지

현재 이 연구는 해양포유류 및 해양동물 유전자 정보분석 기술, 단백질 분리와 특성 분석을 통해 인간질환 치료 활성을 지닌 해양단백질 발굴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해양단백질 의약소재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상처치유와 주름 개선의 효과를 입증하여 2020년 참여 기업인 프로셀에 기술이전을 완료한 바 있고, 세포 투과성을 개선한 피부 의약소재로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부원장직 역임하며 연구기관 중
정규직 전환 가장 높은 비율로 이끌어

연구자로서 순탄한 성공 가도를 달려온 그는 KIOST 기관 운영에도 동참했다. 그간의 연구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지난 2018~2020년 중반까지 KIOST 부원장직을 역임한 것이다. 과학자로서의 본래 임무에 추가된 명예로운 직함임에는 분명하지만, 연구자로서 연구경영이라 할 수 있는 관리자의 길로 들어서는 길은 쉽지 않았다.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줄을 이었고, 각종 행사가 대폭 늘어났으며, 조직 운영상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뛰어가 중재자의 입장에서 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등 그의 일상에는 확연한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그는 KIOST는 일반 행정이 아닌, 연구 행정이 모든 일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운영 철학을 견지했다. 특히, 그의 재임 당시 KIOST의 가장 큰 이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안건이었다. 그가 부원장 직책을 맡기 전년부터 진행되었어야 할 일이 내외부 사정으로 지연되는 바람에 그의 임기 중에 온전히 감당해야 할 문제로 제기되었다. 사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행정팀과 함께 관련 사안을 진행하면서 사전회의만도 수십 번 넘게 한 것 같아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조심스러웠지만, 가장 큰 원칙은 공공연구 기관이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인력 공백이 생긴 부분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했고, 행정팀과 노조, 외부 전문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당사자들과 진지한 논의와 협의를 이어갔죠. 결과적으로 국내 연구기관들 중에서 우리 기관이 제일 높은 비중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켰습니다. 물론, 모든 정책 결정에는 항상 휴유증이 남는 법이고, 지금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지만, 당시로는 숱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크게 무리 없이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부원장 임기 중에 제가 배운 것도 참 많은데, KIOST에서 행정과 연구는 한 몸이고 서로 돕고 인정하며 배려하는 문화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업무상 직선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조용한 카리스마의 리더

연구자인 동시에 리더로서 그는 어떤 유형일까? 그는 자신을 소통에 특별한 재주가 있거나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사안의 핵심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합리적으로 얘기하며 대책을 찾아내는 유형이라고 했다. 터무니없는 것을 두고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쪽이다.

“제가 때로는 굉장히 직선적으로 말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를 무서워하는 직원도 있다는데 저는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심한 소리를 해서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저도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런데 조직에서는 일단 업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업무 방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진 않아요. 가끔 담당자와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제 생각이 항상 옳을 수는 없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견을 제안하는 담당자의 판단을 믿고 맡기는 편입니다.”

그의 말처럼 얼핏 보면 그는 친형처럼 부담 없이 편히 다가갈 수 있는 리더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우수한 연구의 의미와 가치를 중시하는 그로서는 사안의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합리적인 선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믿고 맡기는 편이다. 그런 그를 존경과 신뢰로 따르는 직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좋고 나쁨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과학자로서의 철학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성향은 가족관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들 둘을 키우며 살갑게 다가가는 아빠는 아닐지라도, 시간이 나면 자식들과 함께 운동하며 소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철없는 생각이라 하더라도 자율성을 존중해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있다. 그 외 부족한 부분은 활달한 성격의 아내가 채워주기에 큰 불협화음 없이 소소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가끔 아들들이 “연구자로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프라이드는 있는데, 수입은 왜 그렇게 적어요?”라고 농담을 건넬 때면 말문이 막힌다고. 그는 요즘 세대인 두 아들, 그리고 또래의 후배들을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털어 놓았다.

“자녀세대에 대해 느끼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가급적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무슨 일을 하든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의사건 판사건 어려운 점이 다들 있고, 그 자리에 가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았나요? ‘열심히 했다’라는 기준도 우리가 보는 레벨과 그들이 보는 레벨이 조금 다른데, 본인은 ‘이 정도 했으면 됐다’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거 가지고는 부족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왜냐하면 어떤 일이건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려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고 이룰 수는 없거든요. 연구자의 길도 당연히 그렇죠. 힘들지만 그 노력이 다 본인의, 본인이 속하거나 이끄는 팀의, 나아가 공동체의 업적이 되니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가족들과 함께 한 모습

사진 5. 가족들과 함께 한 모습

치열하게 연구하라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라!

그가 이런 노파심을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연구비가 모두 지원되지 않고, 본인의 연구가 100% 성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 연구원의 길은 기관에서 평균적으로 절반의 연구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본인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외부에서 연구비를 확보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나 연구팀과 겨뤄 치열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의 삶이 마냥 팍팍한 것은 아니다. 치열한 연구 후 다른 면에서는 굉장히 자유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며칠간 밤샘 연구를 하면 다음 며칠을 쉬는 등 자기가 연구 일정을 관리할 수도 있고, 학회 참여를 위해 해외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또 KIOST 연구자들만의 특권, 예를 들면 다양한 국가의 해양연구선을 타거나 태평양해양과학기지와 같은 해외거점, 그리고 남·북극기지 방문 연구 등 남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인생의 큰 자산인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청년들이 자기 분야에서 꾸준하게 노력해서 일가견(一家見)을 가지게 된다면,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다른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일종의 자유)의 멋진 균형이다.

KIOST에 입사한 후 그의 연구원 생활도 어느덧 24년이 흘렀다. 그간의 삶을 돌아보면 나름 ‘우보천리(牛步千里)’의 마인드로 성실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연구자로서 최고의 성과는 세계적 평가를 받는 좋은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나 성공적인 사업화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그는 누구보다 묵묵히 해냈고, 본인을 추천해 준 선배들이 모두 정년을 맞아 떠난 자리에 그도 어느덧 서게 됐지만, 연구에 대한 그의 잠들지 않는 열정은 처음 자신의 전문 분야에 첫발을 디뎠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연구실에서 논문을 검토하고 있는 이정현 책임연구원

사진 6. 연구실에서 논문을 검토하고 있는 이정현 책임연구원

“어찌 보면 연구라는 건 자신과의 싸움 같기도 해요. 연구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결과를 통해 성취를 느끼고 그런 것에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자만이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거죠. 오랜 시간을 KIOST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에서 지낸 만큼 우리 기관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제 마지막 바람은 부디 은퇴하는 날까지 제가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과 연구를 하면서 큰 사건·사고 없이 잘 마무리하는 겁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걷는 연구자의 일상적 경이로움
부푼 열정으로 그리워하고, 결코 잊지 않는 마음속 고래사냥

그의 말에서 부원장직을 수행하며 각종 사건과 사고로 힘들었을 때마다 감내해야 했던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연구경영자의 직무에서 벗어나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연구자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상적 경이로움에 그의 마음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해야 할 새로운 연구를 찾고 꿈꾸는 그의 눈빛에서 불현듯 영화 <고래사냥>의 모티브가 된 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동해엔 고래 한 마리가 있어요, 예쁜 고래 한 마리, 그걸 잡으러 떠날 거예요.”

밍크고래 시료가 아닌, 마음속 푸른 바다에서 자기만의 고래를 소중히 간직하며 연구하는 이정현 책임연구원. 그의 앞날에 치열한 연구자로서의 여정이 펼쳐질지라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긴 숨 한번 내뿜으며, 바로 그 순간 반짝이는 하늘의 별빛도 바라보는 낭만이 함께하기를, 그리고 고래 유전체 연구로 주목을 받은 유전공학 연구가 푸른 바다와 하늘의 별빛과 결합해 작곡할 우아한 과학적 이중주가 울려 퍼질 그날을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켜 안전하게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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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2-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