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KIOST, 나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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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2-02-07
오! 나의 KIOST, 나의 바다
- 독도전문연구센터 김창환 책임연구원 -
학생연구원으로 발을 들였던 KIOST에서 지금까지 일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연구원은 책상 앞에 앉아 연구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이렇게 배를 많이 타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가 2000년대 초반 1년간 배를 탄 날을 계산해 보니 120~150일 정도 되었다.
착한 아들
모범 학생
엉뚱한 꿈
큰 사고 한 번 친 적 없이 조용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성실한 모범생이 된 그의 배경에는 늘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다. “나는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다. 너 스스로 하느님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아라.”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힘든 상황에서도 잔소리하시기보다는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으로 그를 가르쳤다. 그렇게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늘 가슴에 묻고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늘 단정하게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그의 별명은 ‘밤톨이’. ‘밤톨이’는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꾼다는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꿈에 대한 구체적인 미래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지질학자’라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은 조금 엉뚱하다면 엉뚱할 수 있는 계기였다. 어떻게 지질학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수줍게 입을 열었다. “이현세 만화가의 ‘판게아’라는 만화 아세요? 어릴 적 만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게 그 만화였어요.”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고등학생 ‘밤톨이’의 눈길을 끈 것은 만화책 속에 등장한 지질학자였다. 지질학은 학교에서 배웠던 지구과학 과목 중 하나였을 뿐이었는데, 이런 걸 연구하는 직업이 있구나! 를 깨달은 것이다.
해저는 바닷물을 담는 그릇
바다 밑도 육지처럼 높은 산도 있고 넓은 들처럼 편평한 곳도 있고 골짜기처럼 움푹 들어간 곳도 있다. 이렇게 바닷속 지형도 육지처럼 다양하다. 육지의 화산처럼 바닷속에서 일어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산을 해산, 바다 밑에 있는 깊은 계곡을 해구, 평야처럼 편평한 지역은 심해저 평원이라고 한다. 이외에 대륙붕, 대륙사면, 해령이라 불리는 곳도 있다. 또 바다 깊은 곳에서는 육지와 마찬가지로 화산 활동도 일어난다. 화산 활동이 일어나면, 화산이 해수면 위로 올라와 섬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을 화산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울릉도, 제주도, 독도가 화산섬이다.
김창환 책임연구원은 해저를 바닷물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했다. 그릇이 어떻게 생겼냐에 따라 물의 모양, 형태, 특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은 물이지 어떻게 다를 수 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 안의 생태계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릇의 모양에 따라 생물도 변하고 해류도 변하고 해양의 특성이 변한다. 그래서 해저지형은 해양 연구의 기본이자 필수 연구라 할 수 있다. 해저지형을 알아야 그걸 따라 뱃길을 파악할 수 있고, 해양생물이 어디에 어떻게 살며, 바다의 화학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다. 때문에, 다른 분야와 다양하게 연계해 연구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바다를 연구하기 위한 시작과 끝이 되는 연구라는 점에서 해저 지질학의 매력을 느꼈다는 김창환 책임연구원. 그는 필연적으로 KIOST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사진2: 박사졸업식에서 어머니와 김창환 책임연구원
한 지질학도와 KIOST의 만남
연세대 지질학과를 진학해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지도교수 민경덕 교수가 그를 불렀다. 일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었던 걸까. 그렇게 그가 학생연구원이 되어 KIOST에 첫발을 들이게 되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힘든 일이었다. 공부만 해도 힘이 드는데 어쩌자고 일도 같이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던 걸까. 주경야독하며 힘들게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고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그 과정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먼저 결혼한 고등학교 친구가 자신의 아내를 통해 소개해준 예쁜 사람이었다. 31살에 처음 만나 9개월을 연애하고 32살에 결혼했다.
사진3: 가족과 함께 여행 간 태국에서
“처음 봤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내 사람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평소 조용한 성격의 그가 그땐 어디에서 용기가 났는지 그녀에게 자신감 있게 외쳤다. “결혼하자.” 아내는 얼떨결에 그러마 하고 대답했지만, 사실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결혼하자고 해서 얼떨결에 좋다고 하긴 했지만,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단다.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뭘 안다고 결혼을 한다고 했을까...’ 불안해하는 아내를 보며 그는 옆에서 끊임없이 주문을 외듯 속삭였다. “우린 잘 살 수 있어.” 결혼 생활에 확신이 없는 그녀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그가, 학생연구원에서 계약직 연구원. 정규직 연구원이 되는 동안 흔들릴 때마다 이젠 그녀가 그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임시직시절, 다른 친구들이 대기업 취직했다, 공사에 취직했다.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는 불안했다. 다들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데 나는 공부만 하니 이대로 괜찮은 건가. 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며 언젠간 나타날 꽃길을 위해 묵묵히 가시밭길을 함께 걸어주었다.
사진4: 독도 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김창환 책임연구원
동해연구소
독도전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되다.
그는 2008년부터 울진의 동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가족은 포항에서, 김창환 책임연구원은 울진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14년 차 프로 장거리 가족이 되었다, 넓은 바다의 지형 중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그가 조사하는 지역은 이름만 들어도 그 가치를 인정 할 수밖에 없다. 독도. 그는 독도전문연구센터에서 독도 주변 해양을 대상으로 종합해양과학 조사를 하고 있다. 독도의 변화를 연구하고, 독도에 대한 해양과학데이터를 수집하고 축적해 우리 영토를 지키는 일을 한다며 김창환 책임연구원은 자신감 있게 말했다. 2006년 그가 있던 해저지질부에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 연구’라는 사업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독도 연구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독도와 울릉도의 형성 기원을 밝히기 위해 독도와 울릉도 주변 심해저에서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심해 잠수정인 해미래 ROV(Remotely Operated Vehicle)를 이용하여 심해 암석 채취 및 심해 영상조사를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케이블이 연결되지 않고, 통신이 안 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독도 밑의 2,000M 바닥을 실제로 만났을 때의 감회가 남달랐다고 추억한다.
사진5: ROV를 이용한 심해 영상탐사
김창환 책임연구원의 대표 연구로는 독도 해저의 정밀 해저지형을 측정하여 분석한 연구가 있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의 해저에서는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해저단구를 독도 해저에서 발견하게 되었는데, 단구란 계단형 지형을 말한다. 보통 우리나라 동해안 육상에 해안단구들이 존재하고 있다. 단구는 과거 해수면의 변화를 지시하는 지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지형이 독도에는 해저에서 나타난 것이다.
사진6: 독도 해저에 남아있는 해저 단구의 지형 경사도 분석
독도의 해저단구는 독도가 생기고 난 후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그 영향으로 해저지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중요한 지질학적 과거의 역사가 고스란히 독도의 해저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어떤 해저지형에서는 전복이 왜 많이 살고, 어떤 해저지형에서는 왜 해조류가 잘 사는지 같은 질문들이요. 해양생물들이 살기 좋아하는 서식처들이 생물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어떤 생물들이 어떤 지형에서 살고 있는지 해저지형의 영향으로 현재 해류의 흐름은 어떤지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죠. 앞으로 해저지형의 상태에 따라 어떤 해양관리가 적당한지를 타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고민할 과제입니다.”
사진7: 정밀 해저지형, 해저면 영상, 퇴적물 자료를 이용한 해저면 분석
나의 바다, 나의 가족
연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배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배 위에서 보낸 시간을 그는 꽤 기분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정된 공간이다 보니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며 자신만의 독립된 시간을 가지는 곳. 어느 순간 그 시간을 즐기는 때가 온다고 했다. “그렇게 배를 많이 타는데도 멀미는 지금도 해요.” 그는 웃으며 멀미를 안 하는 법은 아직 배우질 못했다고 했다. 오랜 시간 배를 타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났다.
사진8: 아들이 7살일 때 여행 간 해운대 바닷가에서 함께
신혼 시절부터 배를 타고 나가 있는 시간이 많으니 아내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지만, 아들은 달랐다. 아들을 낳고 두 달 동안 항해를 하느라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두 달 뒤 집에 가니 아들이 아빠에게 가까이 오질 않으려고 했다. 아들 입장엔 낯선 아저씨가 갑자기 들이닥치며 ‘I AM YOUR FATHER’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였을 것이다. 아들이 다시 아빠에게 안기기까지는 2, 3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걸핏하면 자리를 비우는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된 후로는 아빠가 돌아올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애교 있는 아들이 되었다. 어느덧 중학교 3학년. 아빠가 하는 일에 영향을 받은 걸까. 장래의 세부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빠 같은 과학도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활동적인 아들을 두고 있는 아빠는 요즘 걱정이 많다. 코로나19로 가족이 함께 즐기던 공통의 취미인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가족과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기억나는 곳은 통영도 좋았고… 부산, 경주, 제주도. 겨울에는 용평 이런 곳에 스키도 타러 가고 많이 다녔어요”
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눈을 반짝이며 빛냈다. 현재 직업이 아닌 다른 일을 했다면 여행 관련 일을 했을 것이라 답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지역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이드 일을 했을 것 같다는 그. 이렇게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을 연구원이 되면서 어떻게 참아 왔을까. 이렇게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직장에서 25년간 지낼 수 있었을까.
사진9: 사보 인터뷰 중인 김창환 책임연구원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고리타분하고 지겨워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창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KIOST와 함께하는 새로운 도전
‘2022년 2월 이달의 칭찬 릴레이’ 주인공으로 김창환 책임연구원이 선정되었다. 그를 칭찬한 사람은 연구관리팀 박홍진 행정원. 독도 사업의 연구관리 행정절차를 같이 진행하면서 함께 우여곡절을 겪은 전우여서일까. 맡은 일을 열심히 한 것뿐인데 고생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칭찬해주셨다며 그는 웃었다. 인생의 첫 입사부터 퇴직까지 KIOST와 함께이고 싶다는 김창환 책임연구원은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는 비법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모든 직장에서도 그렇겠지만, 3년에서 5년 사이에 꼭 한 번씩 지치는 시기가 찾아와요. 그때를 잘 버티고 스스로가 하는 일에 대해 만족도를 높여 나가면 오래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그의 인생 절반을 넘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곳이 KIOST가 될 것이다. 아내와 가족만큼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묵묵히 독도 연구에 힘써온 김창환 책임연구원의 앞날을 응원한다.
* 본 기사는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켜 안전하게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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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
- 2024-01-31